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루이 14세 (문단 편집) === [[예술]]을 사랑한 [[왕]] === 문학, 예술 분야에 많은 지원을 하여 라신, 코르네이유, 몰리에르 등을 비롯한 많은 예술가가 있었고, [[베르사유 궁전]]은 이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따라서 지방의 영지에서 올라와 궁에 상주하며 중앙화된 귀족들과 이들 예술가들의 결합은 화려한 궁정 문화를 꽃피우게 된다. [[춤]] 실력도 무척 뛰어나서 루이 14세 본인이 직접 공연에 서기도 했다.[* 이는 당시 부르봉 왕조의 상황과도 관련이 있었는데, 이미 대제국을 건설한 [[스페인|압스부르고 왕조]]와는 다르게 상대적으로 신생 왕조였던 부르봉 왕조는 왕조의 정당성과 우월함을 직접 백성들에게 어필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 루이 14세의 아버지인 [[루이 13세]]도 아들만큼은 아니지만 이런 행사에서 백성들 앞에서 춤을 췄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www.thelatinlibrary.com/louisxiv.jpg]]}}}|| '''음악만이 루이 14세의 유일한 취미'''라고 [[생시몽 공작]]이 공헌할 정도로 음악을 사랑했으며 그중에서도 궁중 음악가인 [[장바티스트 륄리]]와는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내던 관계로, 그와 그의 음악을 특별히 아꼈다. 심지어 동성애 소문까지 퍼질 정도. 그럼에도 정작 륄리가 동성애에 관련해서 좋지 못한 추문에 휩싸이자 점차 그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륄리가 작곡한 발레에 맞춰 루이가 춤을 추는 공연이 잦았는데, 젊은 루이가 [[태양신]] [[아폴로]] [[https://i.pinimg.com/originals/37/72/98/377298a3cf41a5317b7dc986403084a9.jpg|의상]]을 입고 무대에 서면 온 귀족이 우러러보며 "[[태양]]왕 만세!"를 불렀다. 이것이 '''태양왕'''이라는 별명의 유래였다. [youtube(SYHPNgSUIoE)] 영화《왕의 춤(Le Roi danse)》의 한 장면을 보면 저 별명이 왜 나왔는지 실감할 수 있다. 이 장면에 묘사된 공연은 1653년에 실제로 있었던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